PS1 게임 '성전사 단바인 성전사 전설' 리뷰



오라배틀러 단바인 - 성전사전설 -

기  종 : PS
제작사 : 반다이
장  르 : 시뮬레이션RPG
발매일 : 200년 3월4일
발매가 : 6,800엔

반다이가 건담 관련 게임들을 내놓으면서, '다른 계열로 게임화하고 싶은 것' 설문 조사에 당당히 2위 (1위는 마크로스)로 랭크되어 게임화가 결정된 단바인.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아주 특이한 예로 취급되는 이 물건이 이렇게 팬들의 지지를 받은 데는, 시대에 영향받지 않는 독특한 메카닉 디자인과 판타지적인 세계관때문이리라.


내가 처음 단바인을 알게 된 것은 중1 시절, 한창 건담과 Z건담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건담으로 대표되는, 날렵하고 '현실적인' 각종 리얼 로봇 사이에서 괴상한 딱정벌레같은 모습으로 끼어있는 그 물건은, 바로 처음에는 내 주의를 끌지 못했다. 아니, 내 쪽에서 주의를 줄만한 여력이 없었다.

당시는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여서, '다이나믹콩콩 미니백과'라는 타이틀로 해적판 일본 로봇물 소개 책자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고, 건담, 그리고 그 후속작인 Z건담에 빠져 날마다 서점에서 관련 신간이 없나 살펴보던 시기였다.
정보가 빠른 서울이었다면 친구나 동호인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직접 구해보거나, 일본 원판 자료를 찾아보거나 하며 오타쿠 행세를 할 수 있었겠지만, 지방에 살던 나로서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나 같은 놈은 나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모든 자료는 내 용돈으로 살 수 밖에 없었고, '각자 벌어 먹을 입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라는 모토로 월급 대부분을 당신의 취미를 위해 사용하는 무책임 교사 아버지를 둔 나의 용돈 받는 날은 1년에 단 2번 - 설날의 세뱃돈과 추석때 친척 어른으로부터 받는 돈 - 뿐이었으므로, 한껏 아껴가며 지출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못생긴 변종 풍뎅이 따위가 그려진 책에 눈길을 돌릴 리가 없다.

그러나 이 '추물'은 서점에 드나들 수록 점점 나의 이목을 끌었고, 1년 후에는 당당히 구입 목록에 올라가게 된다. 원인은 당연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적인 메카닉 디자인. 기괴한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어려서부터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라는 남자의 로망에 불타던 내가, 방영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신한 디자인이라고 평가받는 이 푸르딩딩 딱정벌레에 빠지지 않는다는게 되려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학업과 생활에 바빠 점점 잊혀지던 그것은 웹 서핑을 하던 중 어느날 갑자기 내 눈에 들어왔다. '단바인 MG 발매!' 이제는 문화 산업에 종사하는 어른으로서 다시 접한 단바인. 그것은 해마다 줄창 쏟아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너저분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혀 색이 바래지 않는, 시대를 뛰어넘은 매력으로서 내게 다가왔다.

각설하고...
그 뒤로 나는 단바인 관련 자료를 조금씩 찾기 시작했고, 모형을 사고, 불법으로 나도는 저질 동영상이나마 앞부분을 좀 보고, 일어 원판으로 된 해설서를 사고, 드디어 지인의 지인을 통해 복사판 게임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직접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우선 원판인 애니메이션 - 이것 역시 장점만큼 단점도 많지만 - 을 따로 떼어 놓고 게임 자체만을 말하자면, 이건 흔히 말하는 반다이의 범작 게임이다.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그다지 좋을 것도 없고, 그냥 그럭저럭 플레이할만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일본 게임답게 (일본 게임으로서는 보통 수준이겠지만) 처절하게 나쁜 인터페이스와 밋밋한 게임 난이도, 나쁘지는 않지만 2000년 작으로서는 장점이라 꼽을만한 게 없는 그저 그런 게임 시스템, 전혀 밸런스가 맞지 않는 전투 유닛과 아이템, 그런대로 재미있는 이야기 분기와 숨겨진 요소 등등.


한편 원판 애니메이션을 구현한 '고증성'에 비추어 보면, 이게 또, 아주 좋으면서도 나쁜 점도 잔뜩 있는 괴작이다.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나오는 것도 좋고,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맥없는 게임이 되지 않기 위해 오리지널 주인공에 의한 가상 스토리를 꽤 충실하게 이어가는 것도 좋으며, 원판은 물론 OVA나 마이너 설정에 나오는 각종 숨겨진 기체들이 있는 것도 좋다. 원판에 나오는 인물들을 (전부는 아니지만) 꼬셔서 자기 휘하로 넣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캐릭터와 유닛의 고증성은 엉망이고, 주인공과 주인공의 국가가 너무나 강력하며, 스토리는 타국 원정이 연속되는데도 정작 게임 진행은 매번 본국에 들러 저장하고 보급할 수 있으니 박진감이 없다. 뭔가 좀 아쉬운 것이다.


그럼 이제 구체적인 내용을 보자.

처음 시작하면,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을 CG로 리메이크한 애니메이션 오프닝이 나온다.
리파인된 단바인을 비롯하여 각종 오라 배틀러들은 아주 멋지고, 주제가 역시 그대로이므로, 원작 애호가라면 (물론 나도) 아주 기쁘게 볼 수 있다.
뿐만아니라, 원작의 전반, 후반 오프닝도 모두 준비되어 있어, 그대로 놔두면 연속해서 보여준다. 이 동영상은 옵션에 들어가면 언제라도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덧붙여 엔딩 동영상도 있는데, 이것은 게임 엔딩에도 사용된다. 그런 만큼 게임 엔딩을 한 번 본 후에나 볼 수 있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오프닝이 지나고 나면, 오라 배틀러가 강수를 처치하는 애니메이션이 나온다. 이것은 동영상이 아니라 로우 폴리곤으로 만든 실시간 3D 영상으로, 앞으로 게임에서 지겹도록 보게 될 전투 동영상과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오묘한 곡선으로 되어 그 유명한 반다이조차 모형화에 난색을 표했던 오라 배틀러임에도 불구하고 PS치고는 특징을 꽤 잘 잡은 3D모델이기 때문에, 원작 팬들은 이 시점에서 또 한번 감동받을 수 있다.

이 3D를 시작으로 한 초기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대충 게임의 배경 설명을 해 준다. 이곳이 이세계 바이스톤 웰이라는 것,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채 이 곳에 소환되어 왔으며, 우연히 타게 된 로봇은 옆나라의 지방 영주 드레이크 루프트가 빌려준 것이라는 것, 전승에 의하면 주인공은 나라의 위험을 물리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는 성전사인 것 같고, 주인공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나라를 구해달라는 것.
뻔한 전개같지만, 원작 팬이 아닌 이상 전혀 다른 세계에서 묘한 물건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는데 있어, 이 정도 설명은 필수적인 것이다. 더군다나 희미하게나마 한번은 원작에 등장하여 '약소국이라서 중립을 지키겠다'던 국가 '리'의 성전사가 되어, 자신의 판단 여하에 따라 게임을 다양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게 한 점은, 원작을 무조건 따라가기 쉬운 라이센스 게임의 한계를 훌륭히 극복한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이렇게 시작한 게임은 '강수의 숲'이란 곳에서 전투용으로 길들인 강수 '팬서 드라겐'을 타고 시작하는데, 이 시점에선 아직 잘 못 느끼지만 여기서 이미 이 게임의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나타난다.

하나는 처음부터 타게 되는 팬서 드라겐이라는 놈이 생각보다 강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약소국이어서 다른 나라의 왕도 아닌 일개 지방 영주의 눈치를 보는 주제에, 오라 머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터무니없이 강한 군사력인 강수 - 그것도 그 중 최강이라는 드라우겐을 길들여 갑옷까지 입힌 것이다 - 를 몇 마리나 운용하고 있다. 이것은 단바인에 얽힌 전투가 그때까지 없었던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오라 머신때문이라는 설정을 아주 웃기게 만들어진다. 그 강력한 전투력이라는 오라 밤 '들로'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은 물론, 오라 배틀러 게도에 비해서도 어떤 의미로는 더 쓸만하다. (내구력과 공격력에서 열세지만, 이동력, 범용성 면에서 우위에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유닛은 다 유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원작에서의 설정이나 특성과는 상관 없이 - 그리고 게임 안에서의 설명과도 상관없이 -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 단순히 나중에 나오는 유닛이 더 강력하다. 설정에서 기동력이 약하다고 해도 게임 상에서는 더 빠르고, 장갑이 얇았다고 하는 유닛이 최강급의 방어력을 가진다. 이렇게 '고증'에 어긋나서야 아무래도 몰입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두번째는, 이 '강수의 숲'이라는 곳이, 이후 게임 진행 중에 거의 언제든지 가서 레벨과 돈을 올릴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스토리 상에서 아무리 '급히 어디어디로 출발!'이라고 해 봤자, 중간에 10여 번 쯤 강수의 숲에 들러 여유있게 레벨을 올리고 자금을 모아 모든 유닛을 빵빵한 최신예기로 바꿔준 다음, 덤으로 저장까지 하고 나서 다음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마치 MMORPG의 사냥터마냥 무한히 레벨 노가다가 가능.
더 나쁜 것은, '강수의 숲'의 적 배치가 랜덤이 아니고 일정 단계마다 항상 똑같다. 이러니 말 그대로 노가다고, 원래 게임의 다양한 분기에 따른 적과의 레벨 격차를 막기 위해 준비된 이것은 반대로 게임의 모든 밸런스를 무너뜨려버린다. 최강의 라이벌이 나온다고? 무한 사냥터에서 레벨 좀 올리고 장비빨 세우면 기냥 박살내는 걸.


어쨌든 이렇게 튜터리얼을 겸한 첫 전투를 끝내고, 다시 약간의 진행을 하고 나면, 자신을 성기사로 추켜세운 왕은 부상으로 죽고, 주인공이 왕이 된다. 다소 어색하지만 나름대로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아닌 진행.
여기서부터가 진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이벤트가 일어나면 그에 대한 반응 선택하는 방식이다. 일본 연예 시뮬레이션, 혹은 일본 쪽에서는 '어드벤쳐'라고 부르는 장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왕인 만큼 선택지는 상당히 중요한 정책에 관계되고, 이에 따라 세세한 스토리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적을 부하로 영입할 수 있는 이벤트가 벌어지기도 하고, 최종적으로 나오는 엔딩도 달라진다. 현재 여러 자료를 통해 파악한 것은 원작의 주인공 편이 되어서 진행하는 '로우 엔딩'과, 원작의 악의 세력, 혹은 독자적인 야망을 달성하는 '카오스 엔딩' 3종, 그리고 원작의 설정에 충실해서 오라 머신 없이 바이스톤 웰 세계를 구하는 특수 엔딩 등 총 5종이 있다는 것. 참고로 필자는 그 중 로우 루트 엔딩만 본 상태이다.

어느 루트로 가든 풍성한 스토리라인을 제시하므로 꽤 만족스럽다. (특수 엔딩은 제외. 앞서 말했듯이 뒤로 갈 수록 강력한 유닛이 나오는데, 노 머신 플레이는 가장 처음 나오는 팬서 드라겐만으로 끝내야한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난도로서, 공략한 사람에 의하면 강수의 숲 지옥 노가다가 필수라고 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게임에서의 선택지가 로우 루트로 향하도록 은근히 종용하는 점이다. 원작의 주인공 편을 단 한번이라도 도와주면 바로 그쪽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카오스 루트를 따라가는 동안 이런 '회유' 선택지는 수도 없이 나오지만, 반대로 로우 루트로 한번 접어들면 다시는 카오스 루트로 회귀하지 못하고 그저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며 개별적인 스테이지나 선택하는 정도밖에 자유도가 없다.
또한 원작의 주인공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를 지키는 성전사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선택하다보면, 어느사이엔가 카오스 루트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원작의 주인공 측은, 별로 착하거나 대의도 없어 보이는 주제에 무리한 요구를 계속해오며, 이를 거부하면 (게임의) 주인공을 아주 죄인 취급해서 기분 나쁘다.
(반대로 악당인 드레이크 측도 기본적으로는 예의를 갖추지만 가끔 아주 기분 더러운 취급을 할 때가 있다. 약소국의 설움이라는 것인가.)

 


전투 면에서 보자면 전형적이고 꽤 완성도 높은 SRPG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스피드에 따라 턴이 오는 속도가 달라지는 세미액티브 턴 방식, 장거리 무기의 종류별 사정거리 및 범위 템플릿, 적과 아군의 레벨 차에 따라 달라지는 명중률과 경험치 습득량, 대미지 양 등, 만족할만한 요소가 많다.

반면에 ZOC가 없고 (이는 도그파이트가 기본 컨셉인 만큼 당연한지도 모른다), 지형 차이가 거의 없는 점 (이 역시 공중전이므로 당연하다면 당연), 그리고 무엇보다, 적을 공격했을 때 나오는 3D 비주얼이 너무 느리다는 것이 단점이다.

비주얼 자체는 볼만하고 적에게 주는 대미지 량 등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 나쁠게 없지만, 문제는 SRPG 맵은 2D 기반으로 진행되다가 비주얼은 3D로 구성되므로 매번 공격할 때마다 로딩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주얼이 끝나면 다시 이전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2D를 로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오래 기다리게 된다.

여기에 멍청하기 그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은 엄청 끄는 AI와 정면은 정말로 유닛 바로 앞 1열, 후면은 유닛 바로 뒤 1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측면으로 간주된다는 것도 답답한 면이다. 바로 정면에서 한 칸만 옆으로 빗겨나 있어도, 완전히 옆에서 때리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또한 대각선 이동이 없는 것 역시 불만. 일본의 SRPG는 거의 예외 없이 그렇기는 하지만, 대각선 이동 구현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전 게임들을 답습하고 있다.
그 외에 유닛의 남은 내구력 보기 어렵다든가, 3과 9의 폰트가 거의 비슷해 수치를 알아보기 힘들다든가 하는 다양한 문제가 많지만 중요한게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자.

 

스토리와 전투 다음으로 이 게임의 묘미라 할 수 있는 것은 유닛의 개발과 생산이다.

전투가 끝나면 (이벤트 발생에 의해) 적 유닛을 탈취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획득한 기체를 연구해서 생산도 가능하다. 뿐만아니라 아군 진영을 방문했을 때는, 그 진영의 유닛을 구입할 수 있고, 구입한 유닛 역시 기종에 따라 개발이 가능하다. 원작에 나오는 모든 유닛 뿐만 아니라 팬이나 스텝에 의해 만들어진 비공인 기체도 풍부하게 나오기 때문에 더욱 만족스럽다.

개발과 구입에 얻는 자금은 전투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전투 중에 입은 피해나 사용한 탄환 역시 돈을 들여 회복해야 하기 때문에 전투 중에 가급적 피해를 입지 않고  끝내기를 시도하는 것 역시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추가 장갑부터 강화 무기까지 유닛에 장착할 수 있는 다양한 장비가 많고, 개중에는 소모성 1회용 아이템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자금이 앞서 말한 강수의 숲 노가다를 통해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이벤트가 허락하는 한, 항상 최강의 장비를 갖출 수 있다. 이 장비들은 대체로 전투의 주역인 오라배틀러들보다도 훨씬 비쌀 정도로 고가이며, 그만큼 성능도 탁월하다. 뿐만아니라, 같은 장비를 2개 겹쳐 장착할 수 있어, 엽기적인 수치를 만드는 것도 가능.

이에 반해 적은 항상 추가 장비가 없는 노말 타입을 끌고 나오기 때문에, 같은 능력, 레벨, 같은 기체에 적은 겨우 1 대미지를 입히고 이쪽은 200~300 대미지를 입히는 것도 가능하다. 턴 제한이 있는 특별한 스테이지가 아닌 이상, 전투에서 지는 것은 고사하고 1기라도 격추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의 능력치들 역시 들쭉날쭉하다.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쇼 자마야 다른 누구보다도 강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게임의 주인공인 플레이어는? 대충 쇼 자마와 호각. 뭐, 주인공이니까 이것 역시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근데, 이 주인공들이 보통 강한게 아니라 탁월하게 강하다.  일본의 플레이어들이 다들 공감하는 표현으로는 '귀신(오니)처럼 강하다.'
이른바 라이벌이라는 토드나 반 같은 녀석들에 비해 각종 능력치가 거의 30% 정도 더 강해서, 실전에서는 간발의 차로 이기는 정도고, 때로는 패배할 때도 있는 라이벌 녀석들이 게임에서는 거의 상대도 안된다.

라이벌이 이렇다보니, 원작에서 이들에 비해 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는 캐릭터들은 여기에 맞춰서 같이 줄어들거나, 아니면 오히려 더 강력해진다.
예컨데 오라력이 약해 오라 배틀러를 지급받지 못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던 가랄리아는, 그때문에 항상 자신이 부하 입장에서 따라다녀야 했던 '성전사' 토드보다도 훨씬 강하게 나온다.
뭐 여기까지야 그래도 좋다 치자. 원작에서는 초반에 죽은 가랄리아가 이야기 진행에 따라 살아남는 것도, 또 서바인이라는 최강 오라 배틀러를 몰고 재등장하는 것도 제작진 중 가랄리아 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전체 여자 캐릭터 중에서 가장 못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포함해 가랄리아를 좋아하는 단바인 팬은 의외로 많다)

게임 중에는 - 당연하게도 - 적 졸병 (일본어로는 '자코'라고 한다.)을 무수히 처부숴야 하고, 얘네들은 물론 능력치가 최하다. 그런데, 맨처음 소개할 때 얼굴과 이름이 나올 뿐이고 그 뒤로 대사 한마디 없는 우리편 졸병들은, 능력치가 자그마치 적의 엘리트 병사도 아닌 보스급 성전사들과 맞먹는다. 주인공의 나라인 리는 그야말로 인재가 넘쳐나서, 졸병 하나하나가 악당들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지상에서 소환하는 그 강력한 성전사들에 맞먹는 것이다. 이래서야 어디 할 맛 나겠는가.

졸병이 이러니 스토리 상에 약간의 연관성이라도 있는, 나름대로 조연 급인 기사단장의 아들 렌에 이르러서는, 주인공과 쇼 자마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를 압도하는 위력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코몬 최강'. 원작에서 쇼를 끝까지 괴롭힌 반 따위 상대도 안 된다.


결국 멍청한 인공지능 + 전혀 밸런스 안맞는 장비빨 + 무식하게 강한 아군으로 인해 게임은 거의 일방적인 도살 작업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이 싫어 강수의 숲 노가다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엔딩을 봤지만, 그래도 후반부에는 항상 아군 전원이 빵빵한 장비빨에 대부분이 적보다 5레벨 이상 높은 상태였다. 레벨이 그 이상 높아지지 않은 것은, 순전히 적 레벨에 따라 경험치가 주어지기 때문에 적과 너무 차이가 나서 얻는 경험치가 많지 않아서일 뿐.


'성전사 전설'은 원작의 세계를 충실히 구현한데다가 비공인 오라 배틀러까지 모두 넣어주고 한번 엔딩을 본 후에야 이를 찾을 수 있게 하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썼고, 원작 팬이라면 환장할만한 오프닝/엔딩 동영상에 머신 사전, 용어 사전까지 만든 꽤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모든 머신 사전에 나오는 모든 머신의 3D 그래픽을 - 비록 로우 폴리곤이긴 하지만 - 색 변형까지 포함해 다양하게 이리저리 돌려보며 강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하지만 게임 자체로서의 수준은 일본 SRPG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범작에 불과하고, 동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의 우수한 PC기반 미국 게임에는 비교조차 안되는 수준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먼 옛날 MSX 시절을 제외하면 단바인 관련 게임은 이것 하나 뿐이고, 어쨌든간에 범작 축에는 끼는 물건이니 어쩌겠는가. 팬들로서는 여기에 만족하고 계속 파고 들 밖에.


여담이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단바인 공략'이라는 글을 쓴, 별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 든 일본의 플레이어는, SRPG가 아닌 '전략 시뮬레이션으로서의 단바인'에 대한 망상을 하기도 했다. 판타지 전략 시뮬레이션과 거대 로봇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필자 역시 여기에 공감하는 바이다.



















[주1] 오라 배틀러 Aura battler는 원작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주역들이 탑승하고 싸우는 로봇을 통칭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 건담에서의 모빌 슈트 정도의 개념이 되겠다.

[주2] 강수强獸란, 파충류와 곤충의 중간쯤 되는 생물로서, 이 게임의 무대인 바이스톤 웰에 서식하는 일종의 환수이다. 사람의 지팡이 역할을 하는 작고 똑똑한 놈부터 그야말로 괴수라 할 수 있는 거대 몬스터까지 다양하게 있다. 오래 배틀러를 비롯한 모든 오라 머신은 이 강수를 재료로 만드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최근 자료엔 공수恐獸라고 나오기도 한다.

[주3] 세미액티브 턴 방식은 한 턴에 적과 아군이 한번씩 행동하는 턴 기반 방식을 벗어나, 각자의 스피드에 따라 달리 턴을 배정받는 방식을 말한다. 예컨데 스피드가 3인 유닛이 3번 턴을 받는 동안, 스피드가 5인 유닛은 5번 턴을 받는 식이다. 이는 액티브 턴 방식과 비슷하지만, 액티브 턴 방식에서는 턴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 시간이 지나가서 늦게 행동하면 손해보는 것과 달리 세미액티브 턴 방식은 누군가가 턴을 받은 시점에서 그 유닛이 행동을 끝내기 전까지 시간이 정지되어 천천히 여유있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다르다.

by 르혼 | 2008/05/09 16:43 | 단바인 기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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