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 어금니
요즘 일본 번역물을 보면 어금니와 엄니가 혼동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태양의 어금니 다그람' 같은 것.


태양의 어금니라니, 햇살로 잘근잘근 씹어서 갈아버린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
역시 '엄니'를 오역한 것일 게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어금니: [명사]<의학> 송곳니의 안쪽에 있는 큰 이. 가운데가 오목하고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한다. 앞어금니와 뒤어금니로 나누며, 사람에게는 상하 좌우에 각각 앞어금니가 두 개, 뒤어금니가 세 개 있다.


엄니: [명사]크고 날카롭게 발달하여 있는 포유동물의 이. 호랑이·사자·멧돼지 따위의 엄니는 송곳니가 발달한 것이며, 코끼리의 엄니는 앞니가 발달한 것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렇게 사전만 봐도 명확히 뜻이 다른 것이 왜 혼동되고 있을까? 물론 발음이 좀 비슷하긴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어 きば (牙)의 번역인데, 이 단어는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 명백히 '엄니'라고 되어 있다. 어금니는 おくば (안쪽 이)라고 해당하는 말이 따로 있다.


하지만 牙 한자 훈독은 분명히 '어금니 아' 다.


그럼 혹시 '한문에 무식한' 일본에서 한자의 뜻을 잘 몰라 어금니 아를 엄니라는 뜻으로 잘못 쓰고 있는 걸까.


다시 네이버 한자 사전을 찾아보았다.



: 상하 서로 물고 있는 모양을 나타냄. 송곳니도 아래위 교차해서 서로 물고 있는 데서 牙(아)를 송곳니의 뜻으로 빌어 씀, 전(轉)하여 엄니의 뜻



다시 말해, 한자 자체의 의미는 원래 송곳니고, 엄니는 보통 송곳니가 밖으로 튀어나와서 생긴 경우가 많으니까 엄니라고도 쓰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상아의 아가 바로 이 한자다. 상아가 코끼리 엄니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테고.


결국, 일본은 물론이고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도 엄니라는 뜻으로 쓰는 牙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어금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어 きば (키바)와 おくば(오쿠바),  중국어  犬齿 (콴치)와 臼齿 (쥬치)는 발음이 명백히 다른데, 우리말 엄니와 어금니는 상당히 비슷하다.


이쯤 되면 뭔가 수상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내 생각엔 '우리말에 무식한' 우리 조상님네들이, 발음이 비슷한 엄니와 어금니를 제대로 구분 못하고 엄니 아를 어금니 아라고 잘못 쓰고 그 잘못이 대대로 내려온 것 같다.


지금이라도 어금니 아를 엄니 아 라고 고쳐 부르는 게 옳지 않을까.



어학이나 국어 관련은 도대체 보낼 데가 없어서 일단은 과학 밸리로.

by 르혼 | 2009/10/15 19:28 | 고장난 사전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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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운향목 at 2009/10/15 21:07
...한국어가 이런 경우가 많죠..ㅠㅠ
이런거 말고도 워낙 난감한 사례가..ㅇ<-<
Commented by 르혼 at 2009/10/16 09:34
네. 역사나 과학 쪽에서는 민간 연구 / 대중 계몽이 비교적 잘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언어 쪽에서는 그런 게 없고 무조건 국립국어연구원의 지침과 해석을 따르든가, 아니면 그냥 거부하든가 둘 중 하나밖에 없죠.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입장에서 무척 아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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